[tvn] 화성인 바이러스 난장판녀
어느 날 케이블 방송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 왔습니다. 솔직히 인기 프로그램이라 기대가 컸죠. 그러나 작가는 ‘결벽증 에 걸린 사람’에 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정리 컨설턴트’라는 특이한 직업을 발견하고, 제가 그 컨셉트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언제부터 정리를 잘하셨어요?” “학교 다닐 때 정리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등의 질문을 하셔서 “저는 정리를 못했던 사람이고 결벽증도 없습니다”라고 답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나가면 유명해지긴 하겠지만, 정리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이상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출연을 거절했다.
며칠 후 다시 그 작가님께 전화가 와서 방송 컨셉트 를 ‘정리 못하는 여자’로 바꿨는데 출연자의 집에 가서 정리를 해주는 전문가로 출연 해달라고 했습니다. 주인공은 심각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난장판녀’ 화성인이었습니다.
담당 작가님이 대본을 보내주면서 미리 경고를 하셨어요. “사진을 첨부했는데, 아마 깜짝 놀라실 거에요.” 저는 속으로 이제 웬만큼 정리 못 하는 집은 다 가봐서 별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첨부파일을 열었습니다. 순간 속이 울렁거렸죠. 점심 먹은 게 체할 것 같을 정도로 심각한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 당일 도착해 보니, 사진보다 10배는 더 심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집문앞에서부터벌써엄청난악취가풍기기시작했다.들어가보 니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가까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화성인 본인은“일이 너무 힘들어서 치우는 걸 미루다 보니 어질러진 것 뿐”이라며 별일 아닌 듯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청소업체와 저의 도움으로 집은 한 번에 치울 수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삼 일만에도 원래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었기에 화성인에 대한 컨설팅이 꼭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정리법, 생활 속의 각오 등의 다짐을 받고 화성인은 달라진듯한 표정이었습니다.
힘들게 촬영한 난장판녀 편이 방송되고 아는 분들도 많이 보시고, 연락도 주셔서 많이 놀랬습니다.
그리고 더 뿌듯했던 것은, 이후에 난장판녀를 한 번 더 방문하는 방송이 있었는데, 그 때 치워진 모습 그대로 깨끗이 생활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의 공간과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정리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갖게된게 행복합니다.